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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극복할 수 있는 관계일수도

​권은결

   박심정훈 작가는 예술을 통해 과학적으로 알 수 없었던 것들, 또 아무도 명확히 알려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탐구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쇠와 쇳소리, 인간관계의 비가시적인 형상, 시간의 흐름, 기억의 중요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주제는 <존재의 지형도: 관계와 얽힘들>에서 전시된 <어쩌면 그런 관계>(2018~)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가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찾아보고, 믿고 있는 것이 맞다고 데이터화시키는 이미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데이터의 변동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작가는 유년시절에 자기 주도적 탐구보다는 단조롭고 (그의 용어에 따르면) ‘수학적인 삶’을 보냈으며 오히려 그가 현재에 주로 작업하는 사진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을 밝혔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한 계기로 사진이 기록 이외에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정답이 한 개로 한정되어 있는 수학, 과학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살았다면, 이와 정반대로 느껴지는 다양한 답이 인정되는 예술에 끌리게 된 것이다. 둘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작가는 한때 방황하기도 했지만 곧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주제들을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 중 이번 전시에 전시된 <어쩌면 그런 관계>(2018~) 연작에는 위와 같은 그의 철학이 확고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노트를 인용하면,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여러 관계들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다. 나만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했고, 세상의 여러 관계들에는 나만 모르는 어떠한 규칙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규칙을 찾고 싶었기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응시하고, 그것들의 이미지를 채집했다. 이후, 그것들이 엮여지면서 형성해가는 관계들을 관찰하고, 그 기준을 추측하고 추적한다.”고 밝혔다. 즉, 작가는 세상에는 인간의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관계를 이미지의 언어로 추측하는 과정 속에서 이 연작을 제작한 것이다. 특히 그는 관계 속의 비가시적인 공허함의 형상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그가 이렇게 도출한 결과물은 세상이 정한 옳고 그름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그 과정 자체에 의의를 둔다고 할 수 있다. 과거 2019년 경일대 학부 졸업전시에 전시되었을 때는 <어쩌면 그런 관계>의 작품들이 획일화된 프레임 안에서 70X100cm의 같은 크기로 같은 위치에 배치가 되어 있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의 크기와 배치가 가변적으로 설정되고, 더 나아가 연작과 연결되는 <쇠의 드로잉을 위한 아카이빙>이라는 설치조형물이 추가됨으로써 ‘사진의 탈-평면화’를 시도하는 작가의 새로운 작업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뜻깊다.

 

   먼저 사진 작품들을 살펴보면, 작가는 각 세트에서 서로 다른 물질들끼리 가진 형태적 유사함을 포착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관계_01>(이하 세트 1)에서는 틈이 갈라진 배수구와 모기, 세트 2에서는 상처와 늘어진 줄, 세트 3에서는 빵과 형광등 그리고 철문, 세트 4에서는 죽은 참새와 벌레 자국 등 외형적으로 닮은꼴들을 나란히 나열해놓았다. 이는 작가가 자연스레 포착한 순간이기도 하고, 혹은 닮음을 담기 위해 일부러 설정한 상황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이던 그의 사진에 담긴 장면만큼은 선과 면, 덩어리들이 균형감 있게 어우러진다. 색채 또한 자극적이지 않고 빛의 양도 적절해서 그것들 사이의 관계성 자체를 더욱 주목시킨다. 한편 그의 사진들에서는 모기 다리, 스크래치, 형광등, 벽돌 사이의 틈새, 의자 다리 등 전반적으로 ‘얇은 선’이 두드러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작가의 선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번 <존재의 지형도: 관계와 얽힘들>에 전시되진 않지만 시간 속의 공허함과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탐구한 작업인 <담벼락>(2014~)연작에서도 담벼락에 간 금으로부터 만들어진 얇은 선이 두드러지며 선에 대한 그의 관심이 지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필자는 그의 이러한 관심이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두개골에 남겨진 커다란 금의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위와 같은 사진 작업에서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시간을 정지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프레임’이 형성되었고 작가는 그 프레임을 일종의 안전장치로 여겼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쇠의 드로잉을 위한 아카이빙>(2021) 작업은 프레임 속에 있던 오브제들을 밖으로 꺼내는 첫 번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박심정훈 작가는 이전부터 쇳소리에 매우 민감하다는 개인적인 사유로부터 쇠 그리고 이와 유사한 기타 금속들과의 주관적인 관계성 정립을 지속해왔다. 그는 과학적으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쇳소리에 대한 공포가 비가시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대신 이에 덜 반응하고, 더 나아가서는 생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로서 작품의 주제로 쇠를 택하게 된 것이다. 2018년 작인 <Trophies>에서는 쇳덩이들을 변형시키거나 재배치해서 본래의 기능을 잃게 한 상태, 즉 공포 요소를 파괴한 순간을 사진 프레임 속에 박제시키는 데에 집중했다면 본 작품에서는 변형시킨 알루미늄을 프레임 밖으로 끄집어내면서 단계적인 변화와 과감해진 도전적 태도를 보여준다. 한편, 작품에 사용된 알루미늄들은 을지로의 철공소에서 제련과 공정이 되고 남은 찌꺼기들이다. 이것들은 이미 기존의 물질적 기능을 잃고 버려진 것들이지만 작가는 한 번 더 그 기능을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조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어쩌면 그런 관계>에서 사진을 대하던 방식을 잃지 않고 사용하면서도 회화, 특히 붓 터치와의 공통점을 발견해 얇은 알루미늄 덩이를 회화적으로 변형시켰다. 이렇듯 우리는 사진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얇은 선에 대한 회화적 관심이 설치 작업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을 볼 수 있고, 또 그가 금속을 직접 변형하고 조작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공포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 밝혔다시피 박심정훈 작가는 작품 제작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 한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제작과정 자체에 의의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따라 작가는 작품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또한 사진작가라는 타이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그 폭을 넓히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그는 올해 8월에 열릴 ‘ARS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 선보일 VR 공연에 PD로 참여하고, <수림아트랩 2021>에 최종 선정되어 10월에 있을 국악 공연에 참여하는 등 사진을 넘어 더욱 넓은 범위의 미디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