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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예정된 재현

김은비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¹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식 속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 속에도,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도 재현의 흔적은 녹아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속에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재현의 관습이 소리 없이 작동하고 있다. 우리에게 내재한 인식의 틀, 즉 사회문화적 프리즘을 통해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오차가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시각적 권력을 점유해온 인간은 자신을 ‘보는 주체’로 상정하고, 대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오만을 전제로 비인간 존재자를 재현해왔다. 그러나 어떤 대상의 즉자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한 점의 오차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도는 인간이라는 시각 주체의 특권적 관점에서 세계를 압축한 요약본이다. 지도에 재현할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과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은 인간 중심에서 성립한 배제의 논리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관찰한 지형과 사물에는 차등적인 가치가 부여되고, 그 중요도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지도에 반영된다. 우리가 ‘안다고’ 판단한 존재 가운데 일부 정보만이 지도에 기록되며, 지식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한 존재는 생략된다.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분류된 개별 대상은 인간 집단 내에서만 통용되는 기호로 환원되어 지도 위에 재현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대상은 인간의 시선에 따라 왜곡된 채로 표시되지만, 그 재현의 결과는 신뢰할 만한 객관적 정보로서 수용된다. 이로써 우리는 대상과 재현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실패한 재현 속에 내재된 ‘보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그렇다면 온전한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허무한 결말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종착지일까. 재현을 전제로 하는 예술은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까. 이러한 가능성을 모색해나가고 있는 작가 한현은 《존재의 지형도: 관계와 얽힘들》에서 구작 사진 7점과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 사진 28점을 <유령>이라는 제목 아래 시리즈로 선보인다. 인류는 언어 체계가 확립되기 이전부터 미지의 대상이 자극하는 근원적인 공포를 극복하고자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사진상의 오류를 귀신의 증거라고 믿는 심령사진 또한 과학으로는 완벽히 해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의 공백을 발화자의 주관적인 상상으로 채우는 이야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랜 시간 관심을 발전시켜온 한현은 명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존재를 지칭하기 위해 ‘유령’(幽靈)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본래 ‘죽은 사람의 혼령’이나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²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유령은 그의 작업 안에서 새롭게 정립된다. 그는 유령의 의미를 ‘눈에 보이지 않아 인식되지 않는 존재’와 ‘실재와 다르게 왜곡된 채로 인식되는 존재’로 규정하며, 두 축을 중심으로 기존의 재현의 관습이 반영된 ‘보는 방식’과 이를 바탕으로 구축되는 앎의 기반을 의심해본다.

 

   한현은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그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여 그 존재를 인식한 상태를 뜻한다고 가정한다. 인간이 대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지배적인 감각이 시각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그의 전제는 비단 주관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는 주체’로서 인간은 줄곧 시각에 의존하여 대상을 인지해왔으며, 세계에 대한 이해는 ‘시각중심주의’라는 헤게모니를 토대로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한현은 우리의 한정된 시각장 바깥에 위치한 까닭에 그 존재 여부가 인지되지 않아 유령의 상태에 놓여있던 존재를 조명한다. 일상 곳곳에 존재하는 사물의 미세한 흠집이나 얼룩,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스러져가는 존재는 마치 표면이 마모되어 더는 기능하지 않는 큐알코드나 연결이 끊긴 링크처럼 기존의 맥락이 제거된 채 우리 앞에 현현한다. 우리의 의식 바깥의 영역인 ‘시각적 무의식’³을 시각장 안으로 소환하는 한현의 작업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란히 배치된 <white>와 <black>은 언뜻 보기에 단색 그래픽을 연상시키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흐릿한 형상이 사진 표면에 잠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진과 더불어 <highlight>와 <shadow>는 동일한 사진의 밝기를 조절한 결과로, 빛의 정도에 따라 지각되는 형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현은 이를 통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영역 너머에 다양한 존재자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목격하지 못하여 없다고 치부하는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는 인간이 그 존재를 선언하기 이전에 선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어서 한현은 시각이 지닌 오류 가능성을 짚어내 인간이 타자를 파악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차를 가시화한다. 우리는 눈이라는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 그 자체를 지각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대상이 반사한 빛의 자극을 수용함으로써 형상을 인지하게 된다. 그는 대상과 반사되는 빛 사이에 시차(時差)가 발생하며, 빛이 얼마든지 교란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진은 시각 주체와 응시되는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얇은 막이자 스크린으로,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외부 개입으로 인해 조작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현은 쉽게 변형되는 사진의 표면에 천착하여 외부 대상과 시각 경험이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고 분리되는, ‘지시성의 부재’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예컨대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렌즈의 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빛망울(bokeh)이나 빛을 유난히 크게 반사하는 표지판처럼 빛이 교란되는 상황을 수집한다. 또한 의도적으로 해상도를 낮춘 별 사진을 통해 인간의 눈으로 관측한 별빛과 실제 별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조명한다. 아울러 지구의 공전으로 인해 생기는 별의 궤적을 포착하여 별이 고정된 것처럼 지각하는 시각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실제 대상과 시각 작용의 일체감이 결렬되는 지점을 담아내던 그는 사진 촬영 시 빛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오류인 노이즈에도 초점을 맞춘다. 이때 노이즈는 응시되는 대상에서 비롯된 파편이 아니라 재현의 과정에서 새롭게 파생된 유령과 같은 존재이다.

   한현은 기존의 ‘보는 방식’을 의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 그는 손가락 끝에 작은 유리 조각이 박힌 채 상처가 아문 자신의 경험을 작업 내로 불러온다. 유리 조각이 여전히 손가락에 박혀있는지 알 수 없었던 그는, 유리 조각의 예상 위치를 엑스레이로 촬영한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물체의 내부를 가시광선이 아닌 엑스선을 통해 확인하는 이러한 시도는,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한편 <새>는 멀리 떨어져 잘 보이지 않는 새를 확인하기 위해 찍은 사진으로, 한현은 우연히 적목현상이 나타난 새의 눈을 보고 그 역시 자신을 보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고 밝힌다. 한현의 일화는 자크 라캉(Jaques Lacan)의 정어리 깡통 에피소드와 유사한 점이 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라캉은 멀리서 반짝이는 정어리 깡통을 보면서 자신만 깡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깡통 또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한다. 이처럼 인간의 시각적 권력을 위협하는 또 다른 응시의 가능성은 인간을 유일한 시각 주체로 전제하는 믿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 의심의 틈을 여는 한현의 사진은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를 수많은 물질적 얽힘 가운데 새롭게 정립할 계기를 마련한다. 보이지 않던, 그리고 보고 있다고 믿었던 유령의 존재를 직시한다면, 우리는 인간 중심의 시각장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선의 교차 속을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¹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역, 열화당, 2012, p. 10. 

² 네이버 어학사전 (2021년 6월 4일 접속).

³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16, pp. 82-84

  조나단 크래리, 「시각의 현대화」, 『시각과 시각성』, 핼 포스터 저, 최연희 역, 경성대학교출판부, 2004, pp. 63-98.

 전영백, 『세잔의 사과』, 한길아트, 2008, pp. 95-137, 265-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