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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의 지역성 - 탐험하며 자국찍기

문채원

   바퀴와 큰 눈, 그 눈 주변으로 달린 은색의 갈기 같은 장식물, 뒤쪽에 달린 둥근 통에서 찰랑이는 초록색 액체, 팔과 손같은 둥근 깔때기 모양 부분. ‘그’는 절대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 아무튼 움직인다. 그리고 탐험하며, 눈(카메라)으로 목격한다. 그는 경북 청도의 한 농촌 마을인 ‘현리리’¹에 파견된 ‘유목로봇’이다. <Nomad rover and Hyunriri>는 이 로봇이라는 새로운 존재에 의해 재해석, 재구성된 지역사회로써의 현리리에 주목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이다. 영상 작업인 <Searching for the essence of Hyunriri>에서 로봇이 탐색하는 마을의 면면들이 보여진다면, 아카이빙 이미지 시리즈인 <temporary home>에서는 그 면면들이 포착된다.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낯선 존재’인 유목로봇은 화성 탐사선 ‘Curiosity Rover’를 모티브로 한다.² Curiosity Rover가 화성이라는 황무지에서 물과 생명의 흔적을 찾았다면, 작업 속 로봇은 ‘현리리’라는 지역 사회를 ‘유목하며’ 새로운 로컬(local)의 가능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영상 작업 <Searching for the essence of Hyunriri>의 시작을 맞딱드리면, 로봇의 눈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현리리를 살펴봄과 더불어 거리의 부속품들을 모으려 길을 나선다. 영상은 ‘현리리의 essence를 찾으려는’ 로봇의 여정이다. 녹슨 구조물을 바라보던 로봇은 곧이어 도로 위로 바퀴자국을 옮긴다.³ 영상 속 그의 경로를 짚어보자. 그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린다. 옆으로 큰 버스가 지나가는가 하면, 작물이 푸릇하게 자라있는 밭이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농촌 마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곤포 사일리지(Bale Silage)가 쌓여있는 더미 앞을 지난다. 로봇은 계속 달린다. 달리면서 현리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탐색한다. 가로등 빛을 바라보고,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 사이로 난 길을 달린다. 버스정류장에 쌩뚱맞게 놓인 쇼파를 바라보고, 어느 집에 있는 가축으로 있는 소를 바라본다. 시장 바닥을 달린다. 밑에 있는 배수구에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여정들은 로봇의 이미지를 SF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전자음과 함께 한다. 전자음이 멈추는 순간은, 로봇이 자신을 향한 적대적인 손가락을 마주쳤을 때이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과 같은 일상적인 길에서 로봇은, 찡그린 표정을 한 손가락을 마주한다. 이 상황은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로봇은 이내 팔을 뻗어 그 상황을 수집한다. 그리고는 계속 탐험한다. 뒤이어 로봇은 계속 수집한다. 하나로마트의 풍경들, 로컬 상생을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과 교회, 벽화, 새마을 깃발, 마을의 고목 등... 로봇은 다시 처음의 녹슨 구조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을 응시하고는, 수집했던 마을의 요소들을 쏘아넣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거대한 녹슨 구조물의 형태는 하얗고 우뚝 솟은 일종의 기념비로 전환된다. 

 

   영상에서 로봇이 무언가를 수집하거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의 그래픽은 SF적인 요소를 극대화한다. 메탈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은빛의 그래픽, 로봇의 수집 기운에 잠식되는 듯 한 모습들은 로봇이라는 존재의 생경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SF에서나 등장할 법한 ‘인간과 다른’ 생명체로 로봇을 인식하게 한다. 우왕우왕하는 효과음, 로봇이 인식하는 세계의 빛깔도 인간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과는 좀 다르다. 빛깔 뿐만 아니라 로봇의 시선은 인간의 시선과 다르다. 인간의 것보다 더 바닥에 가깝다. 지구의 표면과 시선이 거의 평행할 정도로 그는 세상을 바라본다. 시선의 높이와 각도만 바뀌었음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된다. 눈으로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사물들도 그와 함께 한 화면에 담겨 그 크기를 비교해보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로봇의 시선은 낯설다. 이는 기존 토착 사회 속에 담겨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이다. 지역에는 계속 새로운 존재들이 생겨난다. 로봇은 이러한 개입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입, 즉 로봇의 수집은 단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로봇에게는 초록색 액체가 담긴 항아리 같은 부분이 있다. 로봇이 움직일 때, 그 액체는 찰랑거린다. 어쩌면 마을의 여러 요소들을 한 데 넣고 뒤섞어버리는 멜팅팟의 느낌이다. 마을의 요소들은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의미와 상징이 일대일로 연결되곤 하는 직관적인 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이 모여 지역사회를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이하는 그렇게 등장하는 이미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작가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얻은 이야기들이다. ‘웃음건강센터’는 지역 재생 개념에서 만들어진 극장이며, 서울로부터의 유입 인구를 발생시켰다. 새로운 로컬리티 형성을 도모하였지만 실패한 사례로 작가는 이것을 상정하였다. 그리고 ‘벽화’는 특정 종교집단으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지역성의 사례를 상징한다. 기사를 통해 형성되는 지역의 이미지, 그것을 대체하거나 단장하기 위한 수단(마치 벽화처럼)들이 사회의 단면처럼 보여진다. 잠시 이미지로 등장하는 새마을 깃발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지역을 바꿔보겠다는 의지와, 지역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인간의 의도들, 또 다시 지역을 바꿔보겠다는… 이렇게 교차되고 쌓여버린 사회의 모습을 작품은 말하고, 작품 속에서 떠도는 유목로봇은 그것을 수집하는 것이다. 

 

   수집했던 지역의 파편들은 모빌을 통해 풀어진다. 모빌은 유동적이고 가볍다. 옛날부터 존재했던 지역의 부속품들은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만큼의 지역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로봇은 그것을 수집하였고, 또 그것을 유동적이고 가벼운 존재인 모빌로 치환한다. 봉투에 넣어 공중에 매달고, 그것이 계속 가볍도록, 계속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세계 속에서 유영하도록 의도한다.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물체를 가볍고 유동적으로 바꾸는 이러한 행위를 작가는 의도하였다. 영상 속에도 등장하지만, 이 모빌들은 현리리에 설치된 하얀 기념비에 매달린다. 로봇에 의해 하얗게 바뀌어버린 기념비는 현리리를 기반으로 한 지역성 패러다임의 전환을 나타낸다. 기념비와 모빌이 기반으로 하는 장소는 과거 정미소였으며, 지역의 파편들이 매달린 그 기념비는 정미소의 기둥이었다. 농경 중심 사회였던 과거에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했던 정미소가 폐허가 되어버린 지금, 새로운 존재인 로봇이 개입하여 그 공간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다. 뒤바뀐 지역성과 낯선 존재의 개입으로 새로이 부여된 지역성을 상징하는 것이 ‘하얀(하얗게 된) 기념비’인 것이다. 

 

   결국 작가는 지역적 이동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 ‘현리리’를 탐구하고, 지역의 물건들을 수집하며, 그것을 로봇이라는 낯선 존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즉, 이는 단순히 지역에 대한 지리학적 측면에서의 파악이 아니다. 다층적인 사회, 문화적 퇴적물에 대한 이해와 편집 과정이 수반된 ‘지형도 그리기’이다. 이는 인간을 벗어난 새로운 존재의 시각으로 로컬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며, 새로 발현되고 또 새롭게 구성되는 지역성의 증명이다. 말 그대로 탐험(探險)인 것이다. 우리 인간이 몸을 딛고 살아가는 대지는 물리적인 대지 그 자체라기보다, 더 많은 역사와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땅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땅 위를 이제 지나다니며 내용을 생성할 지구의 수많은 개체들. 그 개체들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땅이 지니고 있는 기억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고, 탐험하고, 낯섦을 직시해보자. 그 땅 흙 위에 자국을 찍어보자. 바퀴든, 발이든, 손이든, 부리든, 꼬리든. 인간의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무엇이든, 땅 위에 흔적을 남겨보자. 이것이 바로 (어쩌면 이제는 무색해진) 세기의 구분을 넘나들며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세기’의 세상 읽기 방식이 될 것이다.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어 필수 요건으로 읽히는 것이 아닌, 여러 요소들이 교차되는 그 시점에 필요한 능력의 일부로 제시되는 읽기 방식이 된다. 

¹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현리리(峴里里). 경상북도 의성군에도 현리리가 있지만 다른 곳이다.

²  2021 홍익대학교 판화과 졸업전시 코끼리프로젝트에 실려있는 작가노트를 참고하였다.

³ 흔히 ‘발자국을 옮긴다’고 쓰는 관용구

⁴ 곤포 사일리지는 수분량이 많은 목초, 사료작물 등을 진공으로 저장 및 발효하는 것이다.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87217&cid=40942&categoryId=31878 (2021년 5월 29일 검색) 추수가 끝난 논에서 자주 보이며, ‘거대 마시멜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