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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이후, 상상된 사물의 세계

조원영

   견고하고 허물없어 보이는 문명 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인간이 악착같이 일궈낸 도시 문명의 배후에는 자연과 물리법칙이 절대자로서 존재하고 인간 문명의 시계추가 멈춰도 세계와 땅은 그들의 할 일을 언제나처럼 해나갈 것이다. COVID-19가 세계를 강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손길이 드물어진 곳에서 자연이 소생하고 그 힘을 드러내던 일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박예나는 인간의, 그리고 이들이 몸담은 문명의 논리와 개념을 벗어나, 인간 문명이 붕괴한 이후의 세계를 그린다.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 <지구의 죽은 각질 Dead skin cells of the earth>(2020)는 작가의 프로젝트 《포스트-퓨쳐 그라운드 Post-future Ground》(2020)의 일환으로,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수집한 일종의 ‘문명 각질’, ‘인공물 파편’인 사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발견된’ 사물들로서, 영국 글래스고 도시 내에서 작가가 직접 주워 수집한 것들이다.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로, 낙후된 곳들과 도시재생사업에 의한 새로운 건물들이 공존하고 늘 공사가 진행되면서도, 주변에는 드넓은 자연이 펼쳐진 다면적인 곳이다. 작가에 의해 발견되는 도시 재생 사업의 과정 등에서 떨어진 ‘각질’들은 3D 스캐너에 의해 디지털로 환원되어, 인간 문명을 증거하는 전시품으로써 새로운 역할과 위치를 부여받는다. 이 사물들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원형을 추론하기 어려운 파편들이지만 선명한 붉은 페인트, 매끈하게 잘린 단면, 규칙적인 공장적 배열 등 ‘문명의 증거’가 일부 남아 있어 그 본래적 역할을 상상하게 한다.

 

   관람객들은 우주가 연상되는 가상 환경에서 한 위치를 부여받아, 소행성 혹은 우주 쓰레기 같기도 한 유영하는 사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 파편들은 클릭하고, 돌려보고, 관찰할 수 있으며, 이들이 발견된 좌표와 전 세계를 스캔한 구글 맵 상의 지도적 위치가 함께 제시된다. 이러한 작품 구조는 사물의 본래적 맥락은 삭제되고(혹은 수집자조차 알 수 없고), 인공적인 ‘문명의 증거’로 인해 자연스레 어떠한 추론과 연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람방식을 가지는, 인간 문명 이후 세대가 인류를 추적하는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다.

 

   이 박제된 사물들은 3D 스캔으로 디지털 데이터로서의 형상을 갖게 된 이후, 물리적 몸체는 작가에 의해 분쇄기로 분쇄되어, ‘흙’이 된다. 물질적 실체가 사라지고, 작가에 의해 부여된 이차적인 의미마저 상실하게 된 흙은 다른 차원의 의미로 나아가는데, 인공물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의 의미를 내포하는, 발생의 근원인 ‘땅’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작가에 의해 붕괴로까지 가는 시간은 압축되고, 인공물은 곧 소생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프로젝트 <포스트-퓨처 그라운드>에서는 ‘지구의 각질’들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인공 흙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써 그들의 재생 가능성을 탐구하고 순환적 의미를 부여한다.

https://www.yenap.org/project-post-future-ground

 

   흙으로 환원시키는 과정까지를 포함한 프로젝트의 다른 작품들은 링크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한편 발견된 사물들의 디지털 전시장은 자체적 물질성과 위치 주소를 가진 하나의 세계이다. 이곳은 가상으로서의 환경이지만 지구 어딘가의 슈퍼컴퓨터에 의해 실제로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현실의 물리성과는 다른 자체적인 물질성과 시공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의도적 재료보다는 발견된 재료를,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있는 것을 활용하며 작품을 제작하는데, 자연과 인간, 인공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러한 작가의 태도가 인공적이고 상상적인 사물의 세계로써 구현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곳은 작가에 따르면 관람객에 의해 ‘발견’되는 장소로서,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으나 특정한 주소로만 접근할 수 있기에 이외의 경로에서는 마주할 수 없다. 이러한 작가의 웹 환경에 대한 관점은 작가가 사물과 현상적으로 관계 맺는 양상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작가의 사물에 대한 태도는 일면 사물들을 대등한 객체 혹은 생명체로서 다룬다는 느낌을 준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인공물들은 도구로써 사용되고 인식되기에, 일반적으로는 동식물보다도 소외된 주변적 배경이자 객체이다. 고로 인공물들은 전 우주적 사이클 속에 포함된 것이 아닌 이질적 존재, 영구적 존재, 주변적 존재로서 간과되고 그 의미가 쉽게 축소되거나, 확대된다. 이러한 사물과 그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전우주적 순환을 파악하고 내보이려는 작가의 시도는 물질과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시야를 환기하여 관람객이 살고 있는 도시 문명의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데,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

 

* 작가의 프로젝트는 글래스고뿐 아니라 이후 서울 등지에서도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