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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적 얽힘의 틈을 보며 생각하기

임은수

   지도는 물질적 존재들의 얽힘을 2차원의 공간에 담아 인간의 시선과 용도에 맞게 기능한다. 시선의 권위를 지닌 인간은 완전히 외부자인 것처럼 지도 위를 더듬으며 그 안에 내재된 존재들을 가늠한다. 그러나 실제 지형은 인간이 포착하여 편성한 그래픽이 아닌 매 순간 구성되고 창조되는 불확정적 존재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인간은 그 지형의 요소들의 얽힘에 밀접하게 관계하여야만 그 본질을 고찰하고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작가 무니페리는 얽혀있는 존재들의 관계를 미시적으로 관찰하여 틈을 찾아 비집는다. 그런 방식으로 작가는 의미로 봉합하려 해도 닫히지 않고 튿어져 나오는 '틈'에 대해서 계속해서 찾아 나가고 있다. 틈은 경계로 구성된 공간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분류가 야기하는 타자화를 거부한다. 작가는 틈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작업 목적의 방점으로 두고, 이를 주로 인간-비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의미 구현을 진행해왔다.

 

   '의지적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존재적 의의를 자연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리하여, 타자화 된 자연을 자본이라는 추상과 등가교환 가능한 존재로 치부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개된 비거니즘과 페미니즘 담론은 대상화와 타자화와 직결되는 이론으로서 존재와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가지만, 이러한 이론적 규정 또한 분류 사이의 틈을 부정하는 기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계관과 완전히 상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리페리는 작품 활동에서 먼저 인간과 비인간의 개념에 대한 가치 왜곡의 의심을 '돼지'라는 존재와 결부하여 심화시켜왔다. 인간 세계 밖의 존재로 여겨졌던 돼지라는 객체가 인간과 비슷한 신체적 특징을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인간의 장기가 되기 위해 연구되며, 인간의 미각 경험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에 집중하여, 작가는 돼지라는 객체를 자신의 신체 안에 들이면서도 동시에 타자화 하는 인간의 모순을 지적한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에는 돼지 인형과 같이 돼지를 형상화하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이런 존재의 틈을 비집는 고찰은 존재의 부재인 '실종'과 그에 수반되는 애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분석, 그리고 동물 복제와 대리모 문제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실종 : 유령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고>는 감전사하게 되는 고양이와의 교감 이야기를 인터뷰한 트레일러 영상으로, 향후 전개될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드러낸다. 이 영상은 에니멀 커뮤니케이터 랄프 하이네먼(Ralf Heinemann)과 진행한 인터뷰의 세 가지 이야기인 '잃어버린 강아지를 교감을 통해 찾은 이야기, 죽은 고양이와의 교감 이야기, 죽은 사람과의 교감이야기' 중 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며,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실종 상태의 존재에 대한 애도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사유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영상 작품과 함께 비치된 설명글에 의하면,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실종과 상실의 사건 파편들을 꿰어보고자 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우연히 발견한 베이징의 Sinogene라는 회사 광고를 보고 일반인들도 쉽게(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하지만) 자신의 반려견 동물을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설명하는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복제 광고를 보면, 여자가 자신의 반려동물을 상실하고 슬퍼하고 – 그런데 중요한건 이때 반려동물은 이미 유령이 되어 여자의 집에 함께 있었지만 여자는 보지 못한다 – 힘든 나날을 보내다 결국 반려견을 복제하기로 결심한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유령이 된 강아지에게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보고 강아지는 이를 받아들인다, 마지막 장면은 여자가 새로 태어난 강아지를 안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무니페리, <실종>설명글 중¹

 

   여기에, 작가는 저서<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백상현,2017)>의 '모든 슬픔은 상실, 공백에 기원하고 애도는 이러한 슬픔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 공백을 메우고 슬픔을 마무리 하기 위함'²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실종과 상실의 슬픔, 그리고 메우지 못한 공허함의 틈의 의미를 '유령'의 존재와 연관짓는다. 그리고 증상으로서의 유령, 그러면서도 그 증상을, 유령을, 복제해버림으로서 벌어진 틈의 봉합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면서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의문을 던진다.

 

   작가 무니페리는 실종과 상실, 애도와 동물 복제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대리모 산업과 연결시켜 보면서 치명적인 슬픔과 상실감을 봉합하기 위해 제공되는 살균된 슬픔³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는 '생명의 존엄함'이라는 문제를 주제로 찬반을 논하는 방식보다는 정신 분석학적으로 접근하고 나아가 한 생명을 위한 몸이 되어주는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또 하나의 작품 <버섯 오케스트라>는 버섯의 생육환경과 나무와의 공생관계, 그리고 송이꾼의 일반적 산업사회에서 벗어난 상황과 비교하여 그들의 관계와 얽힘에 주목한다. 일본에서 진미로 높이 평가되지만 북미에서 주로 자라는 송이버섯의 수확과 무역의 과정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생존과 협동의 동학을 바탕으로 작가는 채집물과 산업사회의 안도 밖도 아닌 틈에 존재하는 관계를 조명한 것이다.

 

   송이꾼은 주로 퇴역한 군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 난민들과 같이 일반적인 직업세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자유롭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송이채취업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느 해는 생육환경이 맞아 송이가 많이 나고 어느 해는 적게 나기도 하며, 많이 나더라도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거나 다른 송이꾼들이 이미 수확해 가버리면 그해에는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버섯무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높은 생산성’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조화도 정복도 없는 교란에 기반을 둔 상태라는 점에서 송이버섯의 인공 재배가 불가한 특성, 그리고 나무와 협력, 공생하며 파열된 생태계나 폐허가 된 곳에서도 자라는 특성은 그들을 채취하는 송이꾼과 많이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송이버섯 악보와 연주자의 영상이 병치되어 있는 이 작품은 식탁에 오르기까지 자연에 순응한 송이버섯의 채취과정과 거래 관계들에 대한 작가의 존재론적 고찰이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로 확장되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무니페리는 송이버섯의 이러한 서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청각 소재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이에 따라 버섯에서 들리는 소리를 작곡해서 악보집을 펴낸 바츨라프 할렉(Vaclav Halek)라는 체코의 작곡가를 발견한 작가는 곡을 연주한 두 명의 핀란드 음악가를 촬영하여 활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작가는 '경계의 바깥'이라 여겨지는 버섯의 소리를 주제로 한 선율을 통해 주목받지 못한 관계와 존재를 호명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으며, 이로서 버섯과 나무의 공생을 통해 이 세계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의 얽힘에 주목한 작품<버섯 오케스트라>는 버섯의 생육환경, 무역, 송이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쉽게 의미 지어지며 종속되는 것들의 공명을 사유하게 한다.

¹ 무니페리, 「<실종: 유령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고>설명글」, 2021

² 백상현,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서울: 위고, 2017

³ 앞 책.

⁴ David Bollier, 「『세상 끝에 있는 버섯 ― 자본주의의 폐허에서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서평」, 정백수(역),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