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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연결망 사이, 그 여백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하여

민지수

“지구 행성에서 인간들은 항상 자신들이 돌고래보다 지능이 높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이 바퀴, 뉴욕, 전쟁 등 엄청난 일들을 성취해내는 동안 돌고래들이 한 일이라곤 물속에서 빈둥거리며 재미나 보는 것밖에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반대로, 돌고래들은 자신들이 인간들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다고 항상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정확히 똑같았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권, p.218)¹

   인간은 과연 세계를 온전히 규명할 수 있는가? 근대를 거치며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특권자에 위치시킨 채 자신을 제외한 모든 물질적 존재자를 ‘비(非)’인간이라는 타자화의 굴레 안에 종속시켰다. 그러나 인간이 그동안 정립해 온 이러한 납작하고 단선적인 인과관계는, 잠재성을 지닌 채 약동하고 있는 다차원의 세계와 그 안에서 발생하고 움직이는 복잡다단한 존재들의 입체적인 영향 관계를 담아내는 데에 실패하며 점차 그 허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현실에만 국한되어 있던 기존의 존재론은 더 나아가 비현실, 즉 가상 공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상은 실제는 아닐지라도 그것을 인지하게끔 하는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실재하는 재료가 아닌 기계 매체를 통해 구현해낸 그래픽은 가상현실이지만, 관찰자는 지각을 통해 그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몰입하는 경험을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현실’이란, 직접적으로 지각하고 나타낼 수 있는 시공간의 사물이나 사건이며 이와 구분되는 '가상'은 잠재상태나 현실화하지는 않은 무언가를 이른다. 가상은 현실의 위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특정 상황이나 기술 안에서는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을 가지기에 존재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작가 소희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미묘한 경계를 탐구하며, 이 간극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공전하는 객체들의 존재 의미를 디지털 매체와 3D 오브젝트로 표현한다. 작가는 프로젝트 <Off To On)> (2021)을 통해 현실과 가상 사이의 여백의 공간을 창조하여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덩어리 물질을 모으고 왜곡하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그렇게 조합된 형태는 그 자체가 가지는 자아를 신체의 형태로 발화하고 자유롭게 그 모양을 왜곡하는 물질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의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보다는 (인간의 관점에서) 더 기괴하고 복잡한 형태의 비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즉 이 물질은 기존에 인간이 규정하려 들던 고정적인 의미와 본질의 바깥에 위치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선보이는 <Shell for 2049> (2021) 연작에서는 가상계의 물질을 실재계에서 감지할 수 있게 된 ‘2049년’이라는 미래의 특정 시점을 설정한다. 이러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가상에서 현실의 위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얽히는 물질들의 관계를 조망하고 탐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물질을 실재계에 존재하는 예측 가능한 일상적 형태의 존재이자 통칭 ‘덩어리(mass)’로 대변되는 질량감을 가진 존재 A로 치환하여 이 영향 관계를 나타내고자 한다. 

   A의 생성 및 발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움직임의 경로는 수행성을 갖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얽혀 있는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이것을 존재들 간의 움직임과 충돌이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설정한다. 이 부딪힘은 기존의 시공간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가상계를 매개한 경로를 통해 발생한다. 따라서 A로 대변되는 존재들 간의 이러한 ‘상호작용’이라는 과정 자체는 비가시적이나 서로에게 미치는 결과론적 영향력은 가시적인, 역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양상을 띤다.

   이렇게 상호작용이 발생할 때, 그 실재계와 가상계의 간극을 거치면서 겪는 이동과 충돌로 인해 A의 본래 질량과 형태에 물리적 변형이 가해진다. 연작 내 작품 속에서 눈에 띄는 <PROTOTYPE>의 기이한 형상은 그 순간 가해지는 영향력과 그로 인한 변형 양상에 초점을 맞춰 그 물질의 형태를 묘사한 것이다. 해당 물질은 대칭적인 듯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꺾임과 질감을 나타내는 구성요소와 중앙부에 놓인 안면의 일부와 같은 형태를 띠는 양안(兩眼)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현실에서 계산 가능한 일률적 양감 안에 놓이지 않는 다차원적이고 가변적인 형상을 띤다. 보편성을 규정하는 인간 시선의 권위를 조소하듯,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시각적으로 ‘일상성’을 벗어난 가변적인 형태와 양감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체 A의 변형이 미친 영향으로 인한 변화는 타 객체에,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 

   <SHELL OFF>의 두 존재는 연작 중에서 인간의 형상에 가장 가까운 외형을 갖추고 있다. <PROTOTYPE>에서는 응시하는 듯한 두 눈만이 유일하게 인간과 유사한 구성요소로서 존재했다면, 이 작업에서는 사이보그에 가까운 형상 일부로서 결합하여 있다.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미묘한 이 존재들은 인간을 닮아 오히려 더욱 언캐니(uncanny)하다. 작품 속 존재들의 유사 인간 형태는 완전히 ‘인간’이라 규정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고정된 기준 바깥의 존재를 ‘비인간’이라는 여집합으로 격하시키는 오만함이 유효하지 않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가상계에서 실재계로의 이동과 충돌 과정에서 물질의 수행성은 예측할 수 없는 양상으로 확산하기에 어떤 존재를 불변의 의미와 본질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 양안은 다시 <SHELL>에서 단독으로 등장한다. 복잡다단한 인과관계와 수행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이 임의로 상정한 물질계를 조롱하듯, 손아귀에 종속된 채 평평한(flat) 표면 위 균질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반어적으로 모든 물질적 존재자는 권능적인 절대자 혹은 이를 자처하는 인간의 법칙 아래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물질마다 상이한 방식으로 개별 수행성을 전개함에도, 인간은 종종 표면적인 인과만을 근거로 진리만을 남겨 둔 듯 공허한 진공 상태와도 같은 화이트 큐브 안에 존재를 위치시키고 납작한 판단의 시험대에 올린다. 이렇듯 작가는 객관적이고 확정적인 결론 안에 존재를 완전히 파악한 채 가두었다는 착오를 범하고 있는 인간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연작 속의 존재들은 인간을 닮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기이하고 불안정하여 기존의 절대적인 인간중심주의적 기준 안에서 재단될 수 없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작품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 미묘한 타자화의 경계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다시 말해 관람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준 삼아 규정한 인간중심주의적인 ‘표준’의 양태를 재고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로써 존재 간 상관관계를 2차원 위에 온전히 파악하여 펼쳐 놓은 결과라 여겨져 온 지도는 마침내 다차원의 불확정성을 드러낸다. 단선적인 평면 위에 정체되어 있던 얽힘은 끊임없이 확장되는 등고선을 통해 각 객체 간의 연관성을 생산하며, 그 양상은 매 순간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변형된다.

¹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Noel Adams),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979)
영국의 각본작가이자 소설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의 코믹 SF 소설로, 광활한 은하계를 배경으로 인류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우주 히치하이커’들의 모험담을 담고 있다. 역사의 주류가 되어 왔던 거대한 것들과 현대 문명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인간의 오만을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비판하면서도 마냥 냉소적으로 가차없이 조소하지만은 않는 관점이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