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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의회: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과 함께 살아가는

정보은

   현재 우리는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21세기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법은 절대적 위치에서 모두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규칙을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서 법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어, 살아가면서 불리한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법대로 해’라며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법은 모든 생명에게 평등했다고 할 수 있는가?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남쪽 나무에는 이상한 과일이 열려 있네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잎사귀에도 뿌리에도 피가 흥건하고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검은 몸뚱이들이 남부의 바람에 흔들리네

 Strange Fruit hangin’ from the poplar trees¹

 포폴라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과일들

 

   이는 미국 흑인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이상한 과일은 교수목에 목매달려 죽은 미국 남부의 흑인들로 인종차별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표상한다. 다소 목가적으로 들리는 이 가사는 에이블 미어로폴(Apel Meeropol)의 시로, 노예제가 폐지된 후 더 성행한 린치(Lycnh)²의 한 단면을 잘 나타낸다. 진나래 작가는 모순으로 둔갑한 법치 사회를 반증하는 이 노래를 기억하며 이상한 과일을 비인간 존재까지 확장해 보편적인 힘의 권력 관계에 놓인 존재들을 해체하고자 한다. 긴 시간 기득권층에 위치한 인간들은 비가시적 또는 가시적 폭력에 노출된 존재들의 권리에 둔감해졌다. 이에, 작가는 명명되지 않은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생명들을 이상한 과일로 역설하고, 인간들의 ‘권리’라고 불리는 것들이 폭력을 거쳐 만든 결과물이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___법 법률안”

 “모든 생명을 위한 법률 제__호”

   이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작가는 질문한다. <테라폴리스 심포이에시스-‘이상한 과일’을 위한 법안제안>은 피라미드 하부에 위치한 존재들, 이상한 과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생명을 위한 정당을 창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법안을 발의하여 사회에 고착화된 정치적 관계들을 재정립한다. 기존의 권력 관계에서 벗어난 전시장은 관람객, 작가, 기획자 모두가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국회로 변화하며 발의한 법안들은 각기 다른 주체의 고유한 법인격을 주장한다.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은 권리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힘(Lebendige Kraft)이며 권리자의 권리 주장은 자신의 인격을 주장하는 일과 같다고 한다.³ 다시 말해, 법은 권리를 보호하고 주장할 수 있는 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법은 오직 특권층의 시선에만 멈춰있다. 현행법은 비인간 주체를 소유와 취득의 대상으로 보며 인간들 사이에서 경제적 관계가 나타나는 것들에 한해 법인격을 부여한다. 광산이 아니라 채굴권을, 해안이 아니라 탐사권을, 토지가 아니라 개발권을 주체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인간이라는, 법외로 간주되는 주체와 시선을 마주하는 일은 얼마나 인간의 권리가 인간 중심적인 환원주의에 빠져있는지 잘 드러낸다. 지극히 인간적인 법 아래서 작가 진나래는 이 작업을 통해, 이 굳어진 권력 관계를 조명하고, 소외되었던 주체에 법인격을 부여해 다른 주체와의 관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비인간 생명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를 정치의 장 속으로 가져온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만의 암묵적 통념을 가지고 있다. 이때 통념은 동식물들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며 정치의 참여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나는”, “그는”, “그녀는”의 대명사에 속하지 않는 존재와의 관계는 매번 일방적이며 권위적이다. 작가는 이 통념을 해체해 ‘이것’, ‘저것’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며 비인간 생명도 정치적 존재임을 포착한다. 하지만 이때, 정당의 참여자들은 비인간 주체의 대리인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대리행위는 직접 주체에게 귀속하고 대리인 자신에게는 미치지 않으므로 대리인은 후견인에 불과하다. 인간은 너무 쉽게 이상한 과일들의 입장이 되겠다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테라폴리스 심포이에시스-‘이상한 과일’을 위한 법안제안>의 참여자들은 비인간의 입장에서 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에서 벗어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권리는 사회관계 안에서 부여되는 권한으로 관계가 없다면 권리를 잃는 것과 같다. 어떠한 생명도 고립된 상태에서는 무의미하며 다른 존재들과의 가변적인 관계들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인간과 이상한 과일들과의 관계를 포착한다. 따라서, 우리가 창당하려고 하는 모든 생명을 위한 정당은 비인간의 권리를 대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인간 간의 복잡한 권리 관계를 주장하고 보호하고자 한다.

¹ Billie Holiday, Strange Fruit, 1939

²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상대방에게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로, 과거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처형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던 말로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가 담겨 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845353&cid=43667&categoryId=43667 네이버 지식 백과, (2021년 5월 29일 검색)

³ 루돌프, 폰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윤철홍 (역). 책세상, 2020, p.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