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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의 전복 : 미생물로 시작하기

이선화

   낡은 인간중심주의를 떨치고 새롭게 재편된 존재론의 필요성은 여태껏 다소 윤리적 논의 하에서만 강조된 측면이 있었으나, 기후의 격변이 가시화 되고 있는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아젠다가 되었다. 새로운 존재론의 구축을 목표로 한 토론의 테이블에서 레비 브라이언트(Levi R. Bryant, 1974~)는 여전히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고 서술하는 방식으로 논증을 전개하는 상관주의자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인간으로 시작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메바로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¹ 우리가 그 어떤 신도 쥐어준 적 없는 허황된 특권을 버리고 새로운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위치를 초월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내려놓고, 비인간 존재자의 시점에서 세계를 인지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작가 최수빈은 다소 인간중심적이었던 기존의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적 이해에서 벗어나 주체와 객체가 전복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맺어질 수 있는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을 짚어낸다.²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예술 창작 재료의 윤리성에 관한 작가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의 작업에는 다른 ‘재료’의 사용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작업 과정 중 우레탄폼의 사용과 작업 이후 버려지는 다량의 자재들을 목격하며 예술 작업에 있어서도 환경을 위한 대책이 필요함을 깨닫고, 실천에 옮겼다. 창작 재료의 윤리성을 고려한 일련의 작업으로 작가가 처음 시도한 것은 바로 재료의 연구였다. 그는 특정 재료를 어느 정도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사용된 금액을 우레탄폼의 경우와 비교했다. 채식을 하는 작가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일종의 생물 재료로 전환했고, 그 첫 실험으로 발효 음료인 콤부차를 만들 때 사용되는 효모균 박테리아 셀룰로오스(SCOBY: Symbiotic Colony Of Bacteria and Yeasts, 홍차버섯, 이하 스코비)를 배양했다.

 

“…당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지고 있는 감염병으로 인해 작업실의 출입은 통제되었고, 3번의 태풍이 오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몸집의 6배에 달하는 박테리아 셀룰로오스의 성장 환경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 작가 노트 중

 

   1년에 걸친 배양 과정을 경험한 이후 작가는 대규모의 수조에 대형 스코비 만들기를 계획했다. 우연이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은 스코비가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는데, 그 해 여름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태풍이 세 번이나 왔으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무섭게 확산되었던 것이다. 감염증으로 인한 작업실 출입 통제로 작가는 한동안 스코비의 케어가 불가능했다. 이윽고 장마가 끝나고 찾은 작업실에서 확인한 스코비는 작가의 몸집의 6배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고, 수조 안에서 이미 그들만의 생태계를 이룬 상태였다. <42kg>(2020)와 <균들의 광장>(2020)은 생물 재료였던 스코비가 작가의 통제 가능 범위를 넘어서며 작가와 재료의 상하관계가 역전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먼저 <42kg>에서 제목의 무게는 스코비가 배양되는 수조에 담긴 액체의 무게이자 작가 본인의 몸무게이다. 작가는 42kg이라는 무게가 창작 재료로서의 스코비와 작가 자신 사이의 상하관계가 전복되는 지점이라고 보았다. <균들의 광장>은 스코비를 키우며 사용한 천으로, 이 작품 역시 좌우 폭 4m 40cm에 달하는 대규모의 작품 크기를 통해 미생물이 인간의 신체를 넘어 제어가 어렵게 되는 전복의 지점을 이야기한다. 한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전염병과 호우, 태풍 등의 자연재해는 비록 우연이었지만 작가가 스코비를 통제 불가능한 생물 재료로 인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작가의 이러한 경험은 종종 환경적 재해가 인간의 통제 가능 범위를 넘어서며 당혹감과 공포감을 주는 동시에 이 넓은 생태계 내에서 우리 인간의 크기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사례와도 연관지어볼 수 있다.

 

   이어 작가는 <Whose side are you on?>(2020)에서 코코넛 오일을 재료로 선택해 작업을 전개한다. 이 코코넛 오일 역시 작가가 채식을 하면서 접한 식재료이다. 작가는 코코넛 오일을 틀에 굳혀 ‘Whose side are you on?’이라는 글씨가 부조 형식으로 두드러지게 만들었고, 굳은 코코넛 오일과 콘크리트로 제작한 구조물 뒤에 냉각기를 부착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은 온도에 따른 물성의 변화를 다룬 작업으로, 상온에서는 액체 상태지만 낮은 온도에서는 하얗게 굳는 코코넛 오일 특유의 물성에 주목한다. 한편 작가는 코코넛 오일을 굳혀 적은 영어 문구를 통해 ‘너는 누구편이야?’라는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는 이 코코넛 오일 작업을 인간의 시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비인간의 시점에서 볼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제시된다.

   작가는 식재료를 활용하여 인간과 비인간을 ‘생물 : 생물’의 관계로 파악하는 작업을 이어나간다. <3개의 고원>(2020)은 위벽을 형상화한 구조물 위에 치아시드를 부어 올린 작품이다. 작가는 식용으로 치아시드를 구매했지만 섭취 후 위에 부담을 느껴 먹지 않게 되었고, 이를 식용이 아닌 예술 창작에의 생물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작가는 만약 먹었다면 식재료에 그쳤을 텐데 물을 주어 키우면 씨앗 하나하나가 싹을 틔어 엄청나게 많은 식물이 자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치아시드가 가진 생동하는 생물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 구조물 중 하나에 나 있는 반구 형태의 홈은 그 안이 자글자글한 질감인데, 이는 신체의 위벽을 상징한다. 작가는 콘크리트에 멜론을 넣고 굳힌 다음 그 멜론을 작업실 동료들과 함께 먹어서 비워내는 방식으로 이 둥근 홈을 만들었다. 위벽을 상징화하는 작업을 먹는 행위를 통해 마무리 짓는다는 부분에서 우리는 이 둘 사이의 흥미로운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생물 재료를 활용한 최수빈의 작품은 조각을 전공한 작가의 입체조형물인 동시에 비인간 존재자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자 결과이다. 예술 창작 재료의 윤리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최근의 작업은 재료의 연구에서 시작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에게 미끄러져 갈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논의로 나아간다.³ 이러한 맥락에서 최수빈의 작품은 ‘미생물로 시작하기’의 실행이라고 논할 수 있다. 식재료를 활용한 그의 예술 창작에서 작가는 우리 인간이 식용으로 정해놓은 목적을 지우고 생물체 혹은 무생물체의 본연의 모습과 가능성을 짚어낸다. 그리고 자신의 실험 과정과 결과를 작품으로써 제시하여 감상자 스스로가 인간과 비인간의 위치를 재고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최수빈의 작품을 통해 그동안 대상으로 파악해왔던 비인간의 수행성을 목격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성립되었던 기존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존재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 맺음과 얽힘을 인지해낼 수 있을 것이다.

¹ 레비 R. 브라이언트, 『객체들의 민주주의』, 갈무리, 2021, p. 86

² 작가 노트 중 

³ 작가 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