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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지구 표면을 일정한 비율로 줄여 평면에 나타낸 그림인 지도에는, 특권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인류가 발 딛고 있는 존재론적 토대를 의심하며 시작된 이번 전시는 지도 바깥에서 그 내부를 내려다보는 권위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지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제안한다. 이때 우리가 근대를 거치며 비대해진 자의식을 포기하고 지도의 축척만큼 작아지고자 시도한다면, 새롭게 발견한 지도 속을 유영하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 지도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잠재성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지도 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적 존재자는 불확정적(indeterminate, 비결정적)인 상태로, 그 수행성에 의해 매 순간 구성되며 창조된다. 이는 단순히 신의 권능적인 힘이나 자연법칙 아래 수동적으로 나타나는 필연적 요소나 우연적(random)인 것이 아니다. 무작위적(pedetic)인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신과 얽힌 다른 존재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도 물질적 얽힘 속에 있는 수행적 존재로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비롯한 모든 물질 사이에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경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질이 지닌 불변의 의미와 본질이 존재하며, 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 역시 이 지도 안에서 더는 유효하지 않다. 개별 물질과 사태는 표면적인 인과만으로 납작하게 해명될 수 없으며, 물질적 관계와 얽힘에 따라 시공간에 형성되는 주름(fold)에 의해 설명된다. 

   이러한 수행적 존재와 그가 형성한 관계의 양상은 평평한(flat) 표면 위 균질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물질마다 상이한 방식으로 수행을 전개하므로 그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비생명체를 생명력을 지닌 능동적인 존재로 규정한다면, 이는 비생명체의 수행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생명체의 수행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삶과 죽음은 생명체의 입장에서 확립된 이분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권의 테두리 안에서 복잡다단한 물질적 수행을 평평하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와 이어져 있는 수많은 얽힘을 배제하게 된다. 그러므로 본 전시에서는 모든 물질을 인간 주변에 늘어놓고 평평한 것으로 치부하기보단 작가들이 포착한 수행적 존재와 그들 간의 복잡한 관계성 자체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물질의 운동은 궤적을 그리며 매끄럽지 않은 지도의 표면을 만들어낼 것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포함된 등고선을 촉지적으로 감각하게 될 것이다. 그 경사진 토대에 서서 수행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구성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자의 뒤얽힘을 인지할 때, 비로소 새로운 “존재의 지형도”는 펼쳐질 것이다.